◇ 열람: 모두 / 글쓰기: 정회원 이상 / 댓글: 정회원 이상
여러분의 기도에 힘입어 어제 어머니의 장례를 무사히 잘 치렀습니다.
기도해 주신 모든 지체들께 감사 드립니다.
어머니는 올해 93세로서, 평안히 하나님 품으로 가셨습니다.
장지사정과 그외 여러 형편 때문에 3일장으로 할 수 밖에 없었고 그 바람에 장례를 주일에 치루게 되어 지인들에게도 연락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저는 내일(6/1)까지 고향인 이곳 충북 제천에 있다가 수요일에 서울 쪽으로 올라가고 6/3(목) 비엔나로 돌아갑니다.
어제, 제가 없는 가운데서도 은혜롭게 주일예배를 드렸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모든 교우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우리 가족은 모두 6남 1녀인데 재작년 외동인 누님을 잃은 후, 이제는 6 형제만 남았습니다.
그 동안 우리 가족이 모두 모인 것은 16년 전 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였는데, 그 후로는 둘째 형님과 다섯째 형님,그리고 제가 각각 파라과이와 LA와 비엔나로 흩어져 다같이 모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형제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어머니는 작년 여름에 쓰러지셔서 1년간 누워 계시다가 돌아가셨는데, 당시 담당의사는 고령과 합병증 때문에 오래 사시지는 못할 거라 진단했지만 그 후에도 어머니는 1년 가까이 더 사시다 가신 것입니다.
그 동안 파라과이로 이주하셨던 둘째 형님이 약 두 달전 영구 귀국하셔서, 고향에 텃밭과 사랑채가 딸린 아담한 집을
마련하셨습니다.
그리고 약 보름 전 쯤, 셋째와 넷째 형님 집 부근의 수도권 요양병원에 계시던 어머니를 고향으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이상한 일은, 그 동안 의식이 없으셨던 어머니께서 넷째 형수님의 "어머니! 이제 우리 제천에 갈 거예요. 둘째네 시골 집에서 사시게 해 드릴게요!" 그 말씀에 눈을 뜨시고 눈물을 흘리셨답니다.
그리곤 고향으로 오신 후 보름 정도를 사시고 돌아가셨습니다.
아마도 늘 그리워하던 둘째가 돌아오고, 또 고향으로 오시게 되자 모든 게 평안해 지셨는지 조용히 가셨습니다.
저 자신은 이미 작년 여름 어머니를 뵈었을 때 작별 인사를 했고, 그 동안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으므로 어머니의 부음이 심한 충격이진 않았지만, 그래도 허전함이 밀물같이 들어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소식을 듣고는 바로 비행기 표를 구해 떠났지만 이미 장례 하루 전인 오후 5시에야 고향에 도착했고, LA에 사시는 막내 형님은 장례 당일 장지로 가기 직전에야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저와 막내 형님의 문상객이 없었는데도, 어머니 고향인데다 형님들의 지인이 많아서인지 만 3일 동안 빈소는 계속 시끌벅적했습니다. 너무 감사했습니다.
어제 장지에서도 축복은 이어졌습니다.
날씨도 너무 좋았고, 어머니께서 뿌리신 30여명이 자손들이 한 마음이 되어 어머니를 환송했습니다.
(다섯 째와 막내는 가족들이 다 참석하지 못했지만 그것을 제외해도 우리 7남매 자손들의 행렬은 꽤 길었습니다)
장례가 끝난 후엔 둘째 형님의 시골 집에 돌아와 장례 기간의 수고와 긴장을 풀고 모두들 쉬었습니다.
오후가 되자 직장생활을 하는 조카들은 모두 귀경했고, 아들들 내외만 시골 집에 남아 어머니 생전의 모습을 얘기하며 저녁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동안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탓에 다들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둘째 형님의 시골 집에 남은 사람은 6 형제와 형수님 세 분(첫째 형수는 돌아가셨고, 다섯째와 막내는 LA와 비엔나에 남았습니다) 이었습니다.
잠은 여자는 여자끼리, 남자는 남자끼리 자게 되었는데, 약속이나 한듯 어릴 때 늘 붙어자던 순서대로 형제가 차례로 누웠습니다.
모두들 50대 초반부터 70대 까지 나이를 먹었는데도 형제는 형제였습니다.
어릴 때의 생각에 잠기면서 다같이 금방 잠이 들었습니다.
얼마간 단잠을 잔 후 깼습니다.
밤 10시에 잤으니 대략 새벽 2시 30분 전후일 거라 생각했는데 어둠 속에서 핸드폰을 열어보니 정말 시각은 2시 20분이었습니다.
새벽에 잠이 깨면 더 이상 잠이 들지 않기 때문에, 자는 것을 포기하고 조용히 일어나 옷을 입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고향의 새벽은 적막했지만 공기는 참으로 깨끗하고 신선했습니다.
그 시간에 다니는 차가 있을 리 없어서 무작정 시내를 향해 걸었습니다.
시골 길을 따라 한 시간을 걸어가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했습니다.
어머니와 우리 가족들, 그리고 우리 교회, 또 나의 남은 인생 등...
그 모든 생각의 결론은 늘 같습니다.
힘들고 어려긴 하지만 그래도 고백할 수 있는 것은 하나입니다.
인생은 아름답고 살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항상 소망을 잃지 말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하면서 또 승리했으면 싶습니다.
(.... 여기까지 쓰고 더 쓰려다 보니 새벽 6시가 됐군요. 중요한 메일 체크는 이미 했고 아마도 꼭두 새벽에 일어나시는 둘째 형님이 행방 불명된 막내를 몹시 찾을 것 같군요. 얼른 집으로 돌아가야겠습니다. PC 방 총각도 청소해야 하는데 왜 안 가나 하고 자꾸 눈치를 줍니다. 해서 얼른 줄여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은 형님들과 어머니 산소에 가서 떼가 잘 입혀졌나를 확인하고, 장례기간 동안 몹시 고생했던 형수님들과 조카며느리들을 위해 형님들이 점심을 사 주시겠다고 합니다. 저도 기대가 됩니다.
목요일에 뵙겠습니다. 샬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