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람: 모두 / 글쓰기: 관리그룹 / 댓글: 정회원 이상
성경 창
제목 남자로 산다는 것은
제가 우리 교우들 가운데 특정 계층을 위해서 설교를 준비하는 경우는 좀처럼 없습니다.
그런데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해서 한 번쯤은 남자들 특히 가장들을 위한 말씀을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우리 교회의 교인구성으로만 보면 거기에 해당되는 분들은 20 % 미만입니다.
하지만 그 20 % 의 남성들은 나머지 80 %의 교인들과 다들 직접적인 관계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말씀 역시 들어야 될 대상은 우리 모두 다입니다.
오늘 말씀으로 우선은 남자들의 기가 살았으면 좋겠고, 아내 되시는 분들과 자녀들은 남편, 또는 아빠를 좀 더 깊이 이해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아이들이나 우리 여선교회 집사님들이 제게 똑같이 주문하는 게 하나 있습니다.
저더러 웃기는 얘기, 농담을 하지 말래요.
왜냐하면 제 농담은 너무 오래되고 진부해서 오히려 썰렁해진다는 거예요.
그래도 저는 이날 이때까지 거기에 굴하지 않고 열심히 해 왔습니다.
오늘도 우리 아이들과 여선교회 회원들의 비난을 감수하면서 그런 얘기를 하나 해 드리겠습니다.
부부가 외출을 했습니다. 그런데 남자가 갑자기 무단횡단을 합니다.
놀란 트럭 운전사가 차창을 열면서 냅다 욕을 합니다.
“이 바보, 멍청이, 얼간이 병신, 쪼다야! 똑똑히 걸어!” 그럽니다.
아내가 묻습니다.
“저 운전사 아는 사람이에요?”
“아니!”
“그런데 어쩜 그렇게 당신을 잘 알아요?”
우리는 안 그렇지만 요즘 한국에서는 남편들이 이런 취급을 당하고 삽니다.
먼저 말씀을 시작하기 전에 남성들에게 말씀 드립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사람들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분들입니다.
자부심을 가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작년에 한국에 갔을 때, 교보문고에 가서 매장 전체를 한 번 훑어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중에 가정에 관한 코너를 돌아 보면서 발견한 게 있었는데, 아내를 사랑하는 방법에 관한 책은 참 많은데 남편을 사랑하는 것에 관한 책은 별로 없더라는 것입니다.
남편들이 각성을 많이 하나 보지요?
그런데 드물게 남자가 남편으로 겪는 그 고충과 심리적인 것들을 분석한 책이 몇 권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남편사용설명서’ 라는 책이 있었습니다.
제목만 보고는 약간 불쾌한 기분이 들었는데 - 무슨 세탁기나 전자 렌지도 아니고- 하지만 내용을 대충 보니까 어떻게 남편을 고장 안 내고 잘 사용할 수 있나를 기독교적 관점에서 잘 안내한 책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남자가 사랑 받는다고 느낄 때’라는 책이 있었는데, 이 책도 성경적 관점에서 쓴 좋은 책이었습니다.
아내 여러분!
한국에 가시면 이 두 권의 책은 꼭 사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은 그 책들 가운데 공감하는 부분이 있어서 그 내용을 추려 봤습니다.
오늘 세 가지의 이야기를 할 텐데 말씀 가운데 은혜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대부분의 부부들은 서로 좋아서 결혼합니다.
요즘은 옛날 같지 않아서 싫은데 억지로 결혼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막상 결혼을 하고 나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서 어려움 겪는 경우를 적잖이 만나게 됩니다.
특히 여자들의 경우, 남자 때문에 속을 많이 썩는다는 얘기를 듣는데요.
정말 속 썩이는 남자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남자가 어떤 존재인지 몰라서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큰 싸움으로 번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럴 때 여자들은 남자에게 정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느끼지요.
그런데 사실 남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여자가 문제라고 생각을 합니다.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걸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서 그 부분이 일정 부분 해결되기를 바랍니다.
도대체 남자는 어떤 존재일까요?
첫 번째 이야기입니다.
여자는 결혼하면 남편이 자기만을 생각해 주고 자기만을 사랑해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적어도 세상의 모든 관계들보다 자기를 우선순위로 생각하고 살아줄 거라고 생각하고 결혼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어떻습니까?
여자가 결혼하고 나서 가장 먼저 깨닫는 것은, 남편은 내 편이 아니라 남의 편이라서 남편이다 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보통 남자들은 남들에게는 정말 잘 합니다. 인사도 잘 하고 신사적이고 매너도 좋습니다.
일도 잘 해서 능력 있는 사람이라 인정도 받습니다.
그러나 막상 아내가 느끼는 것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남편들은 밖에서는 잘 하면서 집에만 돌아오면 180도 달라져서 아내를 무시하고 업신여기고 자기에게 희생을 강요한다고 느낍니다.
남들에게 하는 만큼 자신에게 신사적이지도 않고 매너도 없기 때문입니다.
남들은 말합니다
“아휴, 자기는 남편 잘 만나서 좋겠어!”
그러면 속으로는 그럽니다
“네가 한 번 데리고 살아봐라. 그런 소리가 나오나!”
사실 여자들은 ‘꽃보다 남자’에서
저는 안 봐서 모르겠는데, 아주 나쁜 남자라면서요?
매너도 없고 버릇도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게 못되게 굽니다.
그러나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에게는 목숨까지 바칠 수 있지요.
그런 남자를 여자들은 좋아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자분들 슬퍼하십시오!
안타깝게도 보통 남자들은 정 반대입니다.
남들에게는 잘 하면서 아내에게는 잘 못합니다.
아내는 이런 남자의 태도에 대해서 배신감을 느낍니다.
“결혼 전에는 그렇게 매너가 좋았던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바뀔 수 있나, 남에게는 그렇게 잘 하는 사람이 어떻게 나한테는 이렇게 대할 수 있지?” 그럽니다
남들에게는 속을 다 내 보이면서 잘 하는 사람이 아내한테는 그러지 않거든요?
그러니까 “사랑이 식은 것 아니야? 더 이상 나를 좋아하지 않나 봐!” 그럽니다.
그런데 막상 여자들이 이런 생각을 하는 것에 대해서 남자들은 그건 너무나 심한 비약이라고 항변합니다.
아내를 여전히 좋아하고 사랑하는데 그냥 그렇게 하는 것 뿐이에요.
여자들의 생각과는 달리 남자들은 이런 이중성에 대해서 당연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죄책감도 전혀 느끼지 않구요.
오히려 여자들이 쓸 데 없는 문제를 제기하면서 사람 피곤하게 만든다고 생각을 합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그건 남자가 가지고 있는 지능과 여자가 가지고 있는 지능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학자들은 이야기 합니다.
남자에게는 어떤 지능이 발달해 있냐 하면, 생존지능입니다.
그리고 여자에게는 관계지능이 발달해 있습니다,.
생존지능이란 게 뭐냐면, 집단이 개체에게 요구하는 게 있잖아요?
사회가 혹은 직장이 요구하는 게 있는데, 그에 따른 역할과 사회적 의무를 잘 수행하는 지능을 말합니다.
생존지능이 발달 해야 그 사회 속에서 살아 남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남자들은 그 집단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과 규범, 이것을 잘 수행하는 지능을 발달시켜 온 것이지요.
그래서 이런 남편들은 남이 볼 때는 참 완벽하지만 집에 들어오면 전혀 그런 성향을 보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집에 들어와서까지 생존지능을 써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집에 들어오면 팍 퍼지지요.
여자들은 남자들의 이런 면을 어떻게든 고쳐보려고 합니다.
대개는 바가지를 긁게 되는데, 그러면 그럴수록 고쳐지기는커녕 그런 아내를 이해할 수 없다고 화를 내게 되고, 또 아내는 화내는 남편을 구제불능이라고 포기해 버립니다.
결국 관계는 악화되어 버리고 맙니다.
내 편을 만들려고 하다가 영원히 남의 편을 만들고 맙니다.
이런 남자를 내 편으로 만드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요? ,
아주 단순합니다.
우선 남자들의 이런 성향, 즉 남자들이 사회지능이 발달된 성향을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나서 할 일은 - 이건 남자들만의 비밀인데- (여자들만 들으세요. 남자들은 듣지 말구요)
남자라는 동물이 제일 좋아하는 것은 인정과 칭찬입니다. 다른 것 다 필요 없습니다.
인정과 칭찬!
칭찬해 주면 되게 좋아 합니다.
그리고 남자는 본능적으로 자기를 인정해 주고 칭찬해 주는 쪽으로 찾아 들어 갑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잘 보여 가지고 그 칭찬을 받아내려고 하는 속성이 있습니다.
아침에 출근할 때, “여보! 정말 당신 멋있어. 최고야! 얼굴에서 광채가 나네! 오늘 조심해야 되겠어! 너무 멋있어! “
우리 집 사람도 제게 가끔 그런 말을 합니다.
그런데 남자들은 그런 말 들으면 좀 어색하잖아요.
그러니까 콧방귀를 뀝니다. (아닌 척 하지요).
그리고 엘리베이터 탁 타고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거울을 들여다 보면서 눈에 힘을 팍 한 번 주고 멋있는 표정을 지어 봅니다.
그게 남자입니다.
남자에게는 생존지능이 강한 반면에 여자에게는 관계지능이 강하다고 그랬지요?
관계지능이란 시쳇말로 홀리는 것입니다.
매력입니다.
아내가 진짜 마음으로 안아주고 수용해주고 지지해 주면, 남편을 내 편으로 끌어당기는 강력한 자력이 발생하기 때문에 남편이 내 편으로 오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가장 강한 인물을 꼽는다면 아마 삼손과 다윗일 겁니다.
둘 다 아주 강한 용사지요?
그런데 이 두 장수도 아내의 말에는 꼼짝 못 했습니다.
삼손은 그 아내가 수수께끼의 답을 알려 달라고 - 들릴라 얘기가 아닙니다. 삼손도 결혼을 했지요?- 일주일 동안 매달리니까 결국 거기 홀려서 대답을 해 주고 맙니다.
다윗도 밧새바가 자기 아들 솔로몬을 그 다음 왕으로 앉혀 달라고 사정하니까 결국은 그렇게 합니다.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여자가 말로 홀리는 데는 당할 재간이 없습니다.
아내 여러분!
지혜를 발휘하셔서 남편을 내 편으로 만드는 축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별로 안 하시네요 벌써 만드셨나?)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보통 여자들은 결혼을 하면 남편이 퇴근해서 집에 오자마자 이런 말 해주기를 원합니다. “아휴! 하루 종일 수고 많았어, 아이들과 부댖기느라 얼마나 힘들었어. 이제 내가 봐 줄께. 나에게 맡겨”
그러면서 아내를 위로하고, 아이들과 놀아주고, 저녁 설거지 해 주고, 아이들 재워놓고 식탁에 마주 앉아 도란 도란 이야기하는 것을 꿈꾸고 결혼합니다.
그런데 실제 남자는 어떻습니까?
집에 오면 일단 일단 밥을 찾습니다.
밥을 차릴 동안 TV를 봅니다. 밥을 먹으면서도 TV를 봅니다. 밥 먹은 후에도 소파에 누워서 TV를 봅니다.
그러다가 여자가 버럭 화를 내는 소리에 깜짝 놀라지요.
남편은 갑자기 화를 내는 아내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아니 조용히 말로 하면 될 것이지 왜 화를 내는 거야. 내가 편안히 집에서 쉬는 게 그렇게 배가 아픈가? 불만 있어?”
그러나 보통 아내는 이미 머리 끝까지 화가 나 있습니다.
남편이 TV를 보는 동안 애가 우니까… 설거지 하면서 어떻게 할 수 없잖아요?
그러니까 남편보고 애 좀 보라고 애 좀 보라고 몇 번이나 얘길 했는데, 무시하고 여전히 TV만 보고 있는 거에요, 여자는 화가 나는 거지요.
그런데 남편은 보통 그렇게 말합니다.
“뭐! 언제 그랬어? 나 못 들었어” 그러지요.
그러면 여자는 “아니 애가 저렇게 울고 있는데 못 들었다는 게 말이 되냐?”고 막 쏘아 부칩니다.
진짜 애를 보니까 울고 있거든요.
그런데 남자는 억울합니다.
진짜 못 들었어요. 진짜 안 들리거든요.
“아니 내가 들었으면 벌써 어떻게 했지. 못 들으면 와서 건드리면 될 거 아냐. 왜 그렇게 화를 내고 그래!”
기분이 팍 상하지요.
남의 집 얘기가 아닐 겁니다.
우리 집도 수십 번 이랬습니다.
안 들려요. 진짜로…
남자들은 왜 집에만 오면 TV를 볼까요? 그것도 넋이 빠지게 볼까요?
그것은 남자에게 집이란 쉬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여자들에게 있어서 집은 쉬는 곳이 아닙니다. 긴장하는 곳이고 일이 벌어지는 곳입니다.
그러나 남자에게 있어서 집은 쉬는 곳입니다.
그래서 이런 노래도 있잖아요?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 내 나라 내 기쁨 길이 쉴 곳도 꽃 피고 새 우는 집 내 집뿐이리 오 사랑 나의 집 즐거운 나의 벗 집 내 집뿐이리”
(아멘!)
제가 볼 때 이 가사는 남자가 지었음에 틀림 없습니다.
집은 남자에게 있어서 쉬는 곳입니다.
하루 종일 밖에서 긴장하면서 생존 지능을 발휘하고 집에 오면 다 내려 놓고 쉬고 싶은 거예요.
꼭 TV를 보는 게 목적이 아닙니다. 보면서 딴 생각할 수도 있어요.
아무 그냥 생각 없이 뭔가에 몰두할 곳이 필요합니다.
머리를 식힐 곳이 필요한 거지요.
그런데 가장 가까이 있는 게 리모콘이기 때문에 TV를 보는 겁니다.
또 한 가지 더 있다면, 남자들은 집에 오면 밥부터 찾는다는 겁니다.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도 세 마디는 한다 그러지요?
아는? 밥 도! 자자!
그런 남편을 보면서 부인은 자기를 무슨 하숙집 주인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쁩니다.
밥을 차려줘도 원하는 반찬이 없거나 맛이 없을 때는 반찬투정을 하고, 음식타박을 합니다.
그러나 그날 따라 먹고 싶은 음식이 올라 왔다 하면, 입을 헤 벌리고 주변 상황 무시하고 그냥 먹는 데만 게걸스럽게 빠져있습니다.
밉지요 아주? …
왜 남자들은 먹는 일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할까요?
학자들은 그렇게 말합니다.
“따뜻한 밥이 휴식의 선언과 안정감의 제공을 뜻하기 때문이다.”
특히 하루 종일 긴장 속에서 생활하다 집에 오면 육체적 피로를 먼저 충족시키고 싶은 욕구가 자연스럽게 생성이 됩니다.
이것은 사실 직업 여성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
남자들이 밥을 찾는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남성들에게 음식은 엄마의 가슴이다. 남성들의 마음 저 밑바닥에는 엄마의 가슴을 평생 소유하고픈 욕구가 있다.’ 그럽니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 남편은 힘 있는 어른으로 나가지만 저녁엔 맥 빠진 아이가 돼서 돌아오지요.
그래서 정성이 담긴 따뜻한 밥상을 제공받을 때 남성은 어려서 어머니에게 받았던 사랑을 떠 올리게 됩니다.
그런데 아내는 어떻습니까?
아내는 아내 대로 남편이 집에 들어오면 하루 종일 아이들 때문에 받았던 스트레스, 그리고 이웃집 여자 때문에 받았던 스트레스를 막 풀어 버리려고 아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들어오자마자 수다를 떨지요.
남편은 화딱지가 납니다.
일단 밥을 먹이고, TV를 좀 보게 하고, 그렇게 몸과 마음을 좀 식힌 다음에, 그 다음에 차 한 잔 따라 놓고 “여보!” 하고 불러서 얘기하면 남편도 얘기할 수 있어요.
남편도 아내를 사랑하거든요. 그러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으니까 충족 되지 않고 어려워지는 겁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경영자는
배고플 때 회의해서 좋은 게 나올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또 너무 기다렸다가 잠자리에서 누워서 말을 시키면 남자는 왕 짜증 납니다.
대화를 하자니 졸립고 안 하자니 아내가 삐질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억지로 억지로 대화를 이어 갑니다.
그러니 대답이 시원찮은 겁니다.
아내는 툭 툭 건드립니다
“들어? 들어?”
“응! 들어 ..”
그러다가 결국은 조금씩 말수가 없어지면서 골아 떨어 집니다
“그럼 그렇지!”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아내는 말이 없습니다..
삐지지요? 시위합니다.
그러면 하루 종일 기분이 나쁜 겁니다.
아내 여러분!
언제 대화하기 좋은 시간인지를 찾아내서 대화를 시도하시기 바랍니다.
남편도 아내를 사랑합니다.
구제 불능이라고 포기하지 마시고 지혜롭게 대화의 물꼬를 트시기 바랍니다.
막6 장을 보면 전도하고 돌아온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말씀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배고픕니다 피곤합니다. 쉬고 싶습니다 이런 얘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수고했다 하시고 한적한 곳에 가서 쉬게 하시고 먹을 것을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내 여러분!
남편을 가동시키고 싶다면 먼저 연료를 충전시키고 가동시키십시오.
남편에게 풍성한 밥상과 휴식은 연료가 됩니다.
좀 조바심이 나도 연료가 채워질 때까지 기다리십시오!
다 채워지고 나면 아내가 맘대로 운전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세 번째 이야기입니다.
흔히 여자들이 꼽는 남자다움은 강하고 믿음직한 것들을 생각합니다.
여자들이 생각하기에 이 사람과 결혼하면 언제나 믿음직스럽게 뭐든지 척척 해 줄 거라고 생각하지요.
두려운 일이 있으면 “내 뒤에 숨어! 내가 해결할게!” 하면서 당당하게 앞서 나가는 남자를 상상합니다.
눈물을 보이지 않고, 힘든 일이 있어도 절대 낙심하지 않고 굳게 서서 자신과 가족들을 지켜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실 남자들 안에는 두려움이 많이 있습니다.
남자들이 겪는 두려움을 풍자한 조크가 있는데요.
제목은 연령별로 겪는 남자들의 두려움입니다 (한국에서의 얘긴데, 뭐 요즘 얘기는 아니고 몇 년 된 거지요?)
30대는 우편 배달부가 오면 두렵다. 여기저기서 막 그은 카드 청구서가 날라 올까 봐요.
40대는 저녁에 아내가 야한 속옷을 입고 서성이면 두렵다 - 아무래도 오늘 밤은 그냥 넘어가지 못하겠는데…
50대는 아내가 곰국을 끓여 놓으면 두렵다 – 한 솥 가득 끓여놓고 4박 5일 여행 가려고 그러지.
60대는 이사 가는 날이 두렵다 – 혹시 날 떼어 놓고 갈까 봐. 그래서 트럭 조수석에 앉아서 절대로 안 내려 옵니다,
70대는 부인이 등산가자 그러면 두렵다. 깊은 산 골짜기에 날 떼어놓고 오려고 저러지.
이 뿐만이 아닙니다.
모 취업정보회사에서 재미있는 설문조사를 했는데요.
이런 제목입니다.
‘불황으로 직장에서 비굴하고 민망한 행동한 적이 있는가?’ (직장에서 살아 남으려고..)
그런데 결과는 80. 1 %가 ‘있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 행동 중에 대표적인 것은 이런 것입니다.
1. 상사 의견이 내 의견과 달라도 무조건 맞장구를 친다 (맞습니다. 네 맞고 말구요.)
2. 아부성 발언을 한 적이 있다 (부장님 없으면 우리 회사 안 돌아가요. 큰일 납니다!)
3. 상사 뒷담화를 막 하다가도 막상 마주치면 90도로 배꼽인사를 한다.
4. 상사의 썰렁한 농담에 해맑게 웃으며 박장대소를 한다 (분위기 맞춰주려고!)
이게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믿음직한 남자들의 솔직한 모습입니다.
흔히 생각하기를 남성은 연약함이나 외로움이나 두려움이란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집단 무의식에서 나오는 허세일 뿐이라고 합니다.
예로부터 남성은 수렵을 해야 됐고, 전쟁을 치러야 했기 때문에 두려움이나 연약함을 숨겨야 됐습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것처럼, 항상 당당하고 능력 있는 것처럼 보여야 했던 거지요.
또 가정에서도 가장의 권위를 지켜 나가야 했기 때문에 마음 속에 있는 두려움을 내색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남자 안의 깊은 곳에는 고독이라는 것이 자리를 잡게 됩니다.
멋있게 얘기해서 고독이지, 사실은 외로움과 두려움입니다.
특히 나이 50이 되면 인생의 하프타임을 지나서 나른함이 찾아오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그때쯤 되면 내면적인 외로움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게 되지요 .
이 외로움과 우울이 심해지면 생의 의미를 느끼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이것을 내 버려두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남자의 외로움을 달랠 수 있을까요?
제가 매일 아침 열어보는 메일이 두 통이 있는데 ‘생명의 삶’과 ‘사랑 밭 새벽 편지’인데 사랑밭 새벽 편지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나이 쉰에 회사로부터 정리해고를 당한 한 남편이 절망 끝에 서 있었습니다.
평생 오직 한 길로만 달려왔다고 자부하는 남자였지요.
단 한 번도 곁길로 간 적 없이 그저 열심히, 묵묵히 회사 일을 해 왔습니다.
그 회사의 발전과정에서 그는 살아 있는 역사이자 산 증인이었습니다.
그랬기에 회사는 남편에게 목숨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그런 남편에게 조용히 전달된 정리 해고 통지는 완벽한 배신이었습니다.
원래 과묵한 성격이라 집에서도 회사 얘기는 일체 하질 않았습니다.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망연자실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겉으로는 담담한 표정을 지으면서 이겨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에 며칠 동안 생각에 잠기다가, 결국 삶을 포기하기로 하고 이 약국 저 약국을 다니면서 수면제를 사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가족들에게는 이 모든 것을 비밀로 했습니다.
때마침 가족들은 다가오는 남편의 생일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20년을 넘게 살아 온 아내는 요즘 들어 쉽게 잠을 들지 못하는 남편, 말수가 줄어들고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있는 남편, 어깨에 힘이 빠진 남편의 모습을 예의주시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예감한 아내는 대학 다니는 아들과 딸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는 남편 생일날 특별 이벤트를 하기로 했습니다.
드디어 남편 생일이 되어서, 정성껏 음식을 준비하고, 집을 예쁘게 장식했습니다.
식사를 하고 난 다음 드디어 가족들은 준비한 이벤트를 시작했습니다.
남편의 나이가 50 이니 아내는 남편을 만나 행복했던 것 50가지를 읽어 나갔고, 아들과 딸은 아빠가 자랑스러운 이유를 50 가지 써서 읽었습니다.
아내가 하나씩 읽어 나가자 눈시울이 뜨거워지기 시작했고, 아들과 딸이 연이어 읽어 나가자 그만 통곡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가족들한테 무릎을 꿇고는 자신을 용서해 달라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통곡 속에서 그는 말했습니다.
정리해고 당한 사실, 그래서 사실 삶을 포기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고백했습니다.
놀란 가족들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기는 했지만 그 정도인 줄은 몰랐다고 하면서 그렇게 몰라줬던 자신들을 용서해 달라고 또 통곡을 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남편은 어디론가 일찍 나가면서 아내에게 쪽지를 썼습니다.
놀란 아내는 황급히 일어나서 쪽지를 읽었는데 내용은 이랬습니다.
‘여보! 혹시 놀랄까 해서 미리 말하는데, 내가 극단적인 행동을 할까 봐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말아요. 나는 내가 가장 소중한 것은 잃지 않았다는 것을 어제야 비로소 알았소. 사실 난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당신의 남편이고 이 집의 가장이란 게 너무 자랑스럽소. 직장만 잃었지 거기서 얻은 내 경험과 노하우는 잃은 게 아니니까 새로운 일을 찾아보려고 해요. 나를 필요로 하는 데가 반드시 있을 거라 믿어요. 저녁 시간 전에 돌아 오겠소’
여러분!
이 이야기에서 무엇을 느끼십니까?
남자도 지독하게 힘들고 외로울 때가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길 수 있는 힘은 그를 사랑하는 사람이 그의 곁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자살률이 OECD 국가 중에 최고라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런데 자살률도 연령대 따라 차이를 보입니다.
우리 생각엔 젊은 애들이 많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2005. 10월 1일자 모 일간지에 보니까 전체 자살의 약 30 % (28.8 %) 가 60대 이상의 노인들이었습니다.
연령대별 최고지요?
그런데 주로 여자는 없고 남성들이 자살을 많이 하는 걸로 나와 있습니다.
왜 노인 남성들의 자살률이 높을까요?
그것은 바로 정체성의 위기에서 오는 것입니다.
남성들은 밖에서 돈을 벌어야 존재의미를 느끼는데 퇴직을 하면 그게 다 없어지는 겁니다.
삶의 어떤 의미를 못 느끼면서 하루 하루를 산다는 것은 힘겨울 수 밖에 없겠지요.
그때 이길 수 있는 힘은 소중한 관계입니다.
왜 여성들은 자살이 적을까요? 왜 여성들을 나이가 들어도 괜찮은 것일까요?
여성들은 관계를 잘 맺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성들은 집에서 자녀와의 유대가 공고하니까 관계가 깨지지 않고 유지가 됩니다.
그리고 교회에 나가면서 여선교회 회원들이나 소그룹 식구들 그리고 이웃들과도 관계를 잘 맺습니다.
여성들은 퇴직이라는 개념이 없으까요
그렇게 관계가 공고하니까 별 외로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런데 남자는 어떻습니까?
관계란 게 평생 함께 하다시피한 직장 선후배, 동료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그 관계는 퇴직하면서 다 끊어지게 되지요.
그 동안 직장 생활한다고 자녀들에게 소홀했지요? 자녀들이 불편해 합니다.
아내에게도 큰 소리 칠 줄만 알았지, 다정하게 대해줄 줄 모릅니다.
교회도 잘 안 다니니까 끈끈한 관계라는 형성이 잘 안 됩니다.
그럴 때 위기가 찾아오면 대책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관계입니다.
함께 인생을 오래 살아갈 사람들에게 잘 해야 됩니다.
정말 서로들 있을 때 잘 해야 합니다.
나와 함께 오래 살아갈 가족들, 교회 식구들, 이웃들이 삶의 위기를 극복해 나갈 힘이 되는 겁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같이 읽어 볼까요?)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전4:9~10)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왜 하와를 지으셨다고 했지요?
돕는 배필로 지으셨다 그랬습니다.
여자가 남자를 돕기 위해 창조됐다고 기분 나빠하실 것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더 나은 사람이 부족한 사람을 돕는 것입니다.
큰 소리 뻥뻥쳐도 남자는 외롭습니다.
부족하고 연약하다는 사실을 본인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아내이고 가족입니다.
남자들도 이제는 가족에게 좀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것을 함께 나눌 필요가 있는 겁니다. 다 가족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소중한 가족은 그 어떤 힘보다 강한 것입니다.
가족이 없는 분들도 있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통해 교회 안에서 한 가족이 되게 하셨습니다.
각 부서나 소그룹 모임에 들어가서 서로 기도해 주고 보듬어 주고 깊은 관계를 맺어갈 때 그런 외로움을 이겨 나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차제에 아빠와, 또는 남편과 떨어져 사는 여러분께 부탁드립니다.
여러분들도 이곳 생활이 어렵겠지만 한국에 계신 남편, 아빠 역시 배로 힘들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남편, 또는 가장으로서의 원초적인 고독과 여러분들과 떨어져 사는 그 이중의 고독감은 정말 견디기 쉽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이 대충 살아 가려고 합니까, 더군다나 자살할 마음을 갖습니까?
그런 마음이 드는 사람은 거사 직전에 제게 전화 하세요.
죽더라도 혼 좀 나고 죽어야 합니다.
오늘 집에 가셔서 메일이나 전화로 아빠 또는 남편에게 50가지는 아니더라도 다섯 가지만 자랑스럽고 고마운 것을 고백해 보세요.
아마 펑펑 울면서 더 주먹을 불끈 쥘 걸요.
그리고 다음 달부터 송금액이 달라질지도 모릅니다.
이 땅에 남자로 태어나서 남편으로 가장으로 살아가시는 남성 여러분!
힘 내십시오!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입니다.
가정의 달을 맞아서 우리 주님의 늘 함께 하시는 사랑과 행복한 가정으로 회복되는 은혜가 여러분 모두에게 넘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