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람: 모두 / 글쓰기: 관리그룹 / 댓글: 정회원 이상
성경 렘32:6~15
제목 어디에 투자할까?
저는 기계치에다 운동치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덧붙이자면 ‘또 뽑기치’입니다.
어린 세대들은 ‘또 뽑기’가 뭔지를 잘 모를 텐데요, 우리 어릴 때는 구멍가게서 돈을 주고 제비뽑기를 해서 물건을 따는 놀이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어린이들의 코 묻은 돈을 노리는 사행성 오락이지요.
잘 하면 예쁜 인형이나 장난감 총 같은 것도 얻을 수 있지만 잘못하면 돈만 잃고 마는 그런 놀이인 겁니다.
아마 집사님들께서는 어릴 때 다 해 보셨을 겁니다.
어떤 친구들은 할 때마다 좋은 물건을 따는데, 저는 왜 그렇게 안 되는지 맨날 생돈만 잃었습니다.
그리고 자라면서도 그런 비슷한 놀이 – 보물찾기, 제비뽑기, 돈 놓고 돈 먹기 – 를 꽤 해봤는데, 저는 뽑거나 딴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어릴 때부터 그런 것을 잘 하는 친구가 커서도 돈을 잘 벌더라구요.
그 친구들은 탁 보면 흐름이 보이나 봐요.
적당한데 잘 투자해서 착실하게 발전해 나가는 것을 봤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일엔 단 한 번도 재미를 본 적이 없습니다.
아마 선천적으로 그런 쪽엔 재능을 타고 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 일에 젬병인 제가 오늘 투자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아이러니지요?
그러나 말씀을 듣다 보면 모두 이해하시게 될 겁니다.
전문가들 얘기가, 투자에는 세 가지 원칙이 있답니다.
첫째가 ‘안정성’인데, 아무리 수익이 좋아도 안정되지 않은 곳에 투자를 하면 모두를 잃게 됩니다.
그러니까 위험부담을 안고 투자해서는 안 된다는 거지요
둘째는, 수익성입니다.
아무리 조건이 좋다 해도 투자한 것 만큼 수익이 없으면 그건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거지요.
셋째는, 환급성입니다.
투자를 했다가 손해날 것 같으면 얼른 투자한 것을 빼 올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세 가지 - 안정성, 수익성, 환급성- 가 보장될 때만 투자해야 한다는 겁니다.
바로 이게 세상의 논리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이런 세상의 투자원칙을 무시하고, 전혀 다른 방법으로 투자하는 한 사람을 보고 있습니다.
이 사람의 방법은 너무나 달랐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의 방식은 단순히 투자 방법 뿐 만이 아니라 삶 전체를 통과하는 지혜를 보여 주고, 나아가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진정으로 바라는 투자 방식이 어떤 모습인가를 알게 해 줍니다.
짐작하셨겠지만 이 투자는 눈에 보이는 것이라든가 또는 물질적인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수익성으로 봐서는 가장 많이 남는 투자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그 사실을 아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말씀 중에 성령님의 역사로, 배우고 깨닫게 해 주시는 은혜가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유다의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웠습니다.
바벨론 군사들은 예루살렘을 겹겹이 포위하고 있고, 성 안의 민심은 흉흉할 대로 흉흉해졌습니다.
진작에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보내서 경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기며, 예배를 무너뜨리고, 죄악으로 가득 찬 이스라엘 백성은 곧 바벨론에 망할 것이고, 왕을 비롯한 많은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 가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예레미야는 간곡히 하나님 말씀을 전했지만 시드기야 왕은 듣지 않았고, 오히려 그를 왕궁의 감옥에 가둬버렸습니다.
그렇게 예레미야는 아무 죄도 없이 시위대 – 지금의 경호실- 에 갇히게 된 것입니다.
이런 암울한 시기에 오늘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어느 날, 예레미야의 사촌 형제 하나멜이 뜬금없이 찾아와서 아나돗에 있는 자기 밭을 사 달라고 합니다.
지금 바벨론 군대가 유다를 포위하고 있으니까 하나멜도 다른 사람들처럼 경제적으로 굉장히 어려웠나 봅니다.
그래서 땅을 팔려고 했던 것 같은데, 유대 율법에는 땅을 팔려고 내 놓으면 가장 가까운 친족들이 그 땅을 사 줘야 되는 법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멜이 예레미야에게 찾아와 요청을 한 것이지요.
그런데 지금 상황이 어떤 상황입니까?
유다는 지금 전쟁 중입니다.
그리고 그 전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눈꼽 만큼도 없습니다.
더욱이 지금 유다는 완전히 포위 돼서 성안으로 먹거리가 들어오질 못하니까 상상도 못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중입니다.
언제 나라가 망할 지 모르는 일이고, 더군다나 예레미야는 지금 죄수의 신분으로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그런 상황인 겁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땅을 산다?
이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백 번 양보해서 돈을 어디다 쓸지 모를 만큼 너무 많아서 그 땅을 샀다 칩시다.
전쟁에 지면 어떻게 됩니까?
땅은 다 뺏기고 자기는 포로로 잡혀 갑니다.
그러니 이런 마당에 땅을 산다는 것은 어리석음 그 자체입니다.
아무리 가까운 친척이 와서 부탁을 하고 하소연을 한다 한들 들어줄 수 없는 사안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 예레미야는 전혀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합니다.
그 밭을 사는 거예요
세상에 투자를 해도 어떻게 이런 투자를 합니까?
아까 말씀 드린 투자의 3원칙 – 안정성, 수익성, 환급성- 중에 하나라도 부합되는 게 있나요?
전혀 없습니다.
그것도 싸게 산 것도 아니고 전쟁 전의 시가로 삽니다.
100% 잘못된 투자지요?
그런데 오늘 하나님께서는 이 투자가 잘됐다고 우리에게 소개하고 계십니다.
왜 일까요? 왜 하나님은 예레미야의 투자를 인정하셨을까요?
그리고 하나님이 진짜 바라시는 투자는 무엇을 어떻게 어디에다 투자하는 걸까요?
오늘 예레미야의 투자는 세 가지 점에서 아주 탁월한 투자였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잘 배워서 가장 수익이 좋은 그런 투자를 할 수 있게 되기를 다시 한 번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 예레미야는 하나님 말씀에 근거해서 투자 했습니다.
우리가 늘 보고 겪는 일이지만 나라가 어려워지면 별별 흉흉한 소식이 다 돕니다.
“어디 회사가 곧 망한다더라, 부동산 가격이 엄청나게 떨어진다더라, 환율이 폭락해서 금을 사둬야 한다더라. 세금을 가중 납부하게 한다더라 ” 등등 전혀 근거 없는 유언비어가 나 돕니다.
모르긴 몰라도 오늘 본문에 나오는 주전 586년 어간에도 그 비슷한 일이 일어났을 겁니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그런 소리는 안중도 없이 하나님 말씀에만 귀를 기울였습니다.
(다같이 6절~7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예레미야가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였느니라 이르시기를 보라 네 숙부 살롬의 아들 하나멜이 네게 와서 말하기를 너는 아나돗에 있는 내 밭을 사라 이 기업을 무를 권리가 네게 있느니라 하리라 하시더니”
하나님이 미리 예레미야에게 있을 일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레미야는 8절 보니까 ‘이것이 여호와의 말인 줄 알았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 밭을 산 것입니다.
물론 가족들이나 주변 사람들은 다 말렸겠지요.
미쳤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예레미야는 하나님 말씀에만 귀 기울였던 겁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정말 들어야 할 하나님 말씀을 제대로 듣고 있습니까?
혹 꼭 귀 기울여야 할 하나님 말씀보다 사람의 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고 있는 건 아닙니까?
마땅히 들어야 될 소리를 듣지 못하고, 듣지 말아야 될 소리를 듣게 될 때 사람은 잘못된 판단과 잘못된 결정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서 큰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왜 죄를 짓는지 아시지요?
들어야 할 양심의 소리는 듣지 않고, 듣지 말아야 될 유혹의 소리를 듣기 때문입니다.
초범인 사람이 교도소에 갔다 오면 다시 또 죄짓게 되는 이유를 아시지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의 하나는 출소할 때 다시는 죄 짓지 않겠다고 결심했는데도 “이번 한탕만 하고 손 씻자” 는 동료의 말을 거절하지 못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결심을 흔들어놓는 사람들의 말보다,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세상의 잡다한 소리보다 하나님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꾸 상황이 어려워집니까?
여기 저기서 ‘큰 일 났다’ ‘앞이 캄캄하다’ ‘못 살겠다’ 하는 소리가 들립니까?
그럴수록 예레미야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려워지면 어려워질수록, 힘이 들면 힘이 들수록, 고난이 닥치면 닥칠수록, 사람의 소리에 흔들리지 말고 인생의 나침반이 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예레미야는 하나님 말씀에 근거해서 투자했다 그랬습니다.
우리가 투자하는 것은 그렇게 하나님 말씀에 근거해서 뭔가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투자는 하나님 말씀 자체에 투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세상에서 가장 많이 남는 투자는 하나님 말씀에 투자하는 것입니다.
제가 목사니까 한국 교회 중에서 가장 건강하게 부흥하는 교회가 어떤 교회인가를 늘 유심히 봅니다.
몇 년을 두고 봐도 결과는 늘 똑같습니다.
무슨 G12다, 알파 코스다, 제자 훈련이다 별별 방법을 다 쓰는 교회보다, 새벽기도를 비롯한 각종 예배 시간 시간마다 좋은 말씀으로 계속 꾸준히 꼴을 먹이는 교회가 부흥하더라구요.
목사는 매 예배마다 나올 것을 독려하고 말씀을 잘 준비해서 어떻게든 많이 먹이려고 하고, 성도들은 모든 예배 나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서 열심히 참석하면서 말씀 듣고 기도하는 겁니다.
교회의 모든 체계가 단순합니다.
그런데 그런 교회는 정말 건강하게 부흥하는 겁니다.
정말 저나 여러분이나 말씀 많이 읽고, 새벽기도 금요기도, 주일예배, 성경공부 할 것 없이 빠짐없이 나와서 말씀을 막 먹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은 들으면 듣는 대로 우리 머리 속 어딘가에 저장이 됩니다.
한 번 들으면 그냥 지나가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그 말씀을 잘 기억케 하셨다가 적당한 때에 생각나게 해 주시고, 그 말씀이 여러분을 바르게 가도록 하는 겁니다.
중요한 것은 말씀을 많이, 자주 먹는 게 중요합니다.
우리 인생에 그것보다 더한 투자는 없습니다.
혼자 있을 때는 열심히 읽고, 예배 시간이 되면 무조건 나와서 말씀을 들으세요.
그게 인생에 가장 많이 남는 투자가 되는 겁니다.
모두 말씀에 근거해서 투자하시고, 또 한 편으로는 말씀 자체에 더 많이 투자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예레미야는 투자하되 다른 사람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투자했습니다.
말씀 드린 대로 예레미야가 하나멜의 밭을 산 것은 잘못된 투자였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그 땅을 산 것은, 다른 사람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 10절~13절 까지를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증서를 써서 봉인하고 증인을 세우고 은을 저울에 달아 주고, 법과 규례대로 봉인하고, 봉인하지 아니한 매매증서를 내가 가지고, 나의 숙부의 아들 하나멜과 매매증서에 인 친 증인 앞과 시위대 뜰에 앉아 있는 유다 모든 사람 앞에서 그 매매 증서를 마세야의 손자 네리야의 아들 바룩에게 부치며 그들의 앞에서 바룩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지금 예레미야는 죄수의 몸으로 갇혀 있지만 어느 정도의 자유는 주어졌던 것 같습니다.
예레미야는 사촌인 하나멜과
두 통의 계약서를 작성해서 한 장은 잘 봉인한 반면, 또 한 통은 봉인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그가 하나멜의 밭을 산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다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그 두 장의 계약서를 제자인 바룩에게 전해줘서 토기 항아리에 보관하게 했습니다.
아마 70년 후에 포로로 잡혀갔던 예레미야의 자손들이 바벨론에서 돌아와서 보면 항아리의 그 문서를 보게 될 겁니다.
그리고 자기들 땅이 있다는 것을 보고 무척 기뻐하고 감사할 겁니다.
여러분! 예레미야가 왜 그렇게 공개적으로 계약을 했을까요?
그는 실망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습니다.
곧 나라가 망한다고 절망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뭔가 꿈을 주고 싶었던 겁니다.
“여러분! 지금의 상황은 절망적인 것 같이 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 민족을 회복시켜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은 어렵지만 곧 회복될 겁니다. 지금은 앞이 보이지 않지만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올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밭을 산 겁니다. 용기를 가지십시오! 힘을 내십시오!” 그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도 예레미야처럼 희망을 주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남아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은 27년 동안을 감옥에 있었습니다.
만델라 대통령이 감옥에 있을 때에 딸이 아이를 낳아 아버지에게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곤 “아버지! 이 아이의 이름을 지어 주세요” 청하지요
딸의 요청에 만델라는 아이의 이름을 ‘Hope’, ‘희망’이라고 지었습니다.
“너는 희망이야. 감옥에 있는 동안 희망이 나를 떠난 적이 없었지. 그리고 앞으로도 희망은 나를 떠나지 않을 거야.” 그럽니다.
그가 44세 때 종신형을 선고 받고 72세 때 풀려난 게 1993년도였으니까 이제 17년이 넘었군요.
혹시 석방 당시 그를 본 분이 계시는지 모르겠는데 전 세계의 메스컴들이 그를 보고 놀랐습니다.
27년 동안 감옥에 있었던 사람 같지가 않은 거예요.
얼굴이 너무나 평온한 거 있지요?
그것은 정말 참 자유인의 표정이었습니다.
그 다음 해에 그는 대통령이 되는데, 그 동안 얼마나 한이 많았겠습니까?
그런데도 그는 일체의 보복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모든 사람을 포용하고 용서하는 사람으로 세계인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가 그럴 수 있었던 이유가 뭐였을까요?
그의 마음 속에는 단 한번도 희망이란 단어가 떠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현실을 냉정히 바라보면 그다지 희망을 가질 일이 없는 게 사실입니다.
미래가 보장된 것도 아니고, 나라의 경제가 넉넉한 것도 아닙니다.
게다가 분단국가라는 게 큰 일 때마다 우리의 발목을 붙잡습니다.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민족적으로나 별 희망이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중에는 그 동안 품어왔던 희망이 부서지고 깨어지는 아픔을 느끼셨던 분들이 꽤 있을 겁니다.
혹 지금도 그렇게 낙심하고 힘들어 하면서 사시는 분이 계실 지 모르겠어요.
그러나 여러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버려서는 안됩니다.
절망을 부숴버리고 희망을 품어야 합니다.
시인
이 세상 사람들 모두 잠들고
어둠 속에 갇혀서 꿈조차 잠이 들 때
홀로 일어난 새벽을 두려워 말고,
별을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 되라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
그렇습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는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빠로 두고 있는 존귀한 사람들입니다.
두려울 게 뭐 있겠습니까?
모든 사람들이 다 부정적으로 말하고 두려워 할 때라도, 우리는 희망을 노래할 수 있는 겁니다.
희망의 말과 희망의 마음은 전염성이 강합니다.
그래서 오늘 주님은 예레미야를 통해서 우리 역시 그렇게 전염성 강한 희망에 투자하기를 바라시는 겁니다.
우리 이 시간 옆에 있는 사람들과 인사하겠습니다.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됩시다!”
“그래도 희망은 있습니다!”
모두가 다 예레미야처럼 희망을 꿈 꾸고, 희망을 노래하고, 희망을 말하는 주의 자녀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이 남았지요?
특이한 풍습이 있는 섬 사람들 이야기를 잠깐 해 드리겠습니다.
이 섬사람들은 표류해 온 사람을 왕으로 삼다가 1년이 되면 내 보낸답니다.
그런데 내 보낼 때는 꼭 들어올 때의 모습 그대로 내 보낸다고 합니다.
만약 널빤지를 타고 들어왔으면 널빤지에 태워 내 보내고, 헤엄쳐 들어왔으면 또 그렇게 헤엄쳐 나가도록 빈 몸으로 내 보낸다는 겁니다.
그러나 1년 동안은 어쨌든 그들의 왕으로서 그 섬에서 통치하도록 했답니다.
어느 해인가 한 사람이 그 섬으로 표류해 왔습니다.
섬 사람들은 풍습대로 그를 왕으로 삼고 외부 세계의 정보를 얻으면서 그를 1년 동안 섬겼습니다.
그 사람은 영문도 모르고 왕이 됐는데, 왕이 되고 보니 욕심이 생겼어요.
그래서 그 섬에서 가장 크고 좋은 집을 짓고 보물이란 보물은 다 끌어 모았습니다.
그러다가 1년이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널빤지를 타고 그 섬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다시 널빤지가 주어졌습니다.
그걸 타고 나가다가 얼마 못 가 파도에 휩쓸려 죽고 말았습니다.
또 다른 사람이 표류해 들어왔습니다.
그 사람 역시 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앞 사람에 대한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는 생각에, “어차피 1년 후엔 쫓겨나게 될 텐데 먹을 거나 원 없이 먹자” 그러고는 맘껏 좋은 음식을 먹었습니다.
살이 엄청 쪘겠지요?
1년이 됐습니다. 그 사람은 헤엄쳐 들어왔기 때문에 맨 몸으로 내 보내졌습니다.
헤엄치려고 보니 너무 뚱뚱해져서 제대로 헤엄칠 수가 없었습니다.
얼마 못 가 그만 물에 빠져 죽고 말았습니다.
어느 해인가 이번에는 스티로폼을 타고 그 섬에 한 사람이 표류해 왔습니다.
역시 왕이 됐고 앞의 두 사람 얘기를 들었습니다.
1년 동안은 왕이라 그랬지요?
이 사람은 신하들을 시켜 섬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으로 데려다 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섬 전체를 봤더니 그 섬 바로 옆에 조그마한 섬이 하나 있는 게 보였습니다.
물어 봤더니 거긴 아무도 살지 않고 방치된 무인도라는 겁니다.
왕은 즉시 명령을 내렸습니다.
“저 섬에 우물을 파라, 그리고 집을 짓고 밭을 갈고 먹을 걸 잔뜩 갖다 놓아라. 나무를 심고 꽃을 심어라!”
그는 1년 동안 다른 것은 하지 않고 무인도를 자신이 거처할 수 있는 훌륭한 섬으로 꾸미는데 모든 시간과 열정을 바쳤습니다,
그리고 정해진 1년이 되어서 스치로폼을 타고 나가게 됐을 때, 잘 준비해 놓은 그 섬으로 가서 살 수 있게 됐다고 합니다.
제가 어디서 주워들은 얘기라 출처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이야기에도 교훈이 있습니다.
오늘 마지막으로 투자해야 할 곳이 어디엔지 가르쳐 주는 단서가 됐을 겁니다.
첫째는 하나님 말씀에, 둘째는 희망에 투자해야 된다 그랬는데, 그렇다면 셋째는 어디에다 투자해야겠습니까?
세 번째 사람처럼 미래에 투자해야 합니다.
만약 예레미야가 눈 앞에 있는 이익을 보았다면, 그는 밭을 사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멀리 봤습니다.
(다같이 15절을 읽겠습니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사람이 이 땅에서 집과 밭과 포도원을 다시 사게 되리라 하셨다 하니라”
집과 밭과 포도원을 어떻게 하게 된다구요?
“다시 사게 되리라”.
예레미야는 유다가 곧 멸망할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 형벌의 기간이 끝나면,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회복될 거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폐허가 된 유대, 바벨론 사람들의 수중에 들어간 유대를 본 게 아니라 다시 회복시켜 주실 유대를 본 것입니다.
모두들 망하는 것만 봤지만 그는 내일을 봤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밭을 샀던 겁니다.
다들 눈 앞에 있는 단기간 동안의 이익을 추구하다가 나중에 엄청난 손해를 봤던 경험이 있을 겁니다.
꼭 사업이 아니라도 그렇습니다.
편하자고 대충 연습해 가면 나중엔 훨씬 더 힘들어지는 것도 거기에 해당합니다.
귀찮다고 기도하기 싫어하면 정작 기도해야 될 때는 습관이 안 되어 있어서 기도하기 어려워지는 법입니다. (조금 예가 이상한가요?)
어쨌든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게 옳은 투자라는 겁니다.
여기에 대한 각각의 경우는 여러분이 아시리라 믿고 여러분께 맡기겠습니다.
교회도 교회 차원에서 미래에 투자를 해야 합니다.
이 교회는 우리들만의 교회가 아니라 오고 오는 세대들의 교회이기도 합니다.
자칫하면 아무 것도 물려줄 게 없이 새 세대를 맞이해야 할 지도 모릅니다.
그때 그들에게 들을 푸념과 원망을 생각해 봅시다.
해서 지금 더 열심히 미래를 위해 투자 할 일을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의 개인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두 달, 또는 일 이년이 아니라 10년, 20년 앞을 내다보고 준비하고 투자하시기 바랍니다.
외적인 투자와 내적인 투자가 병행되야 되겠지요.
10년, 20년은 먼 훗날이 아닙니다. 금방 돌아옵니다.
아무리 지원이, 지인이라 하더라도 서른은 금방 옵니다.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때의 자신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그때 눈물 흘릴지도 모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그림을 하나 보시지요.
조지 프레드릭 왓츠라는 사람이 그린 그림입니다.
어두운 지구 위에 한 여인이 앉아서 하프를 연주하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하프의 모든 줄이 다 끊어지고 딱 한 줄만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왓츠는 이 그림의 제목을 뭐라 붙였는지 아세요?
‘희망’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없어진 줄에 초점을 맞추지만 왓츠는 남아있는 한 줄에 초점을 둔 거지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디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우리 인생은 결정됩니다.
우리는 절망스런 상황을 맞이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둔 사람입니다.
없어진 줄에 목매는 사람이 아니라 있는 한 줄에도 의미를 부여할 줄 아는 사람들인 겁니다.
이스라엘 사람이나 오늘 밭주인이 하나멜은 절망에 초점을 맞추고 살았지만 예레미야만큼은 희망에 초점을 맞추고 살았습니다.
그런 사람은 절망이란 제목을 붙이는 게 더 옳을 그림에도 오히려 ‘희망’이란 제목을 붙이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그런 사람이 되십시다.
살아 가면서 다른 데가 아닌, 말씀에, 희망에, 미래에 마음을 쏟고 준비하며 투자하는 인생이 되십시다.
그럴 때 우리가 바라는 것들은 실상이 되어 우리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그 아름다운 복이 저와 여러분의 생애에 넘치도록 함께 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