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7. 4

 

성경 눅5:1~7

제목 다시 베드로의 빈 배를

 

 

여러분은 일이 잘 안 풀리거나 마음이 답답할 때 혼자 조용히 찾아가는 장소가 있으신가요?

저는 있습니다. 

바로 비엔나의 남산 격인 칼렌베르크인데, 제가 처음 이곳에 와서 어려움을 겪었을 때 마음을 새롭게 해 주었던 곳입니다.

그곳의 한 카페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비엔나 시내를 바라보면서 앉아 있었지요.

해서 시간이 지난 후에도 뭔가를 계획하거나 조용히 생각할 일이 있으면 꾸준히 거기를 찾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베에토벤 산책길을 걷기도 하고, 어떤 분은 비너발트(비엔나의 숲) 속으로 들어간다는 얘기도 들었는데, 아마 여러분께서도 뭔가 새롭게 시작하고 마음을 다 잡아야 할 때 혼자 찾는 장소가 있을 것입니다.

만약 없다면 이제라도 만들어서 힘들고 어려울 때 그곳을 찾아서 자기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지시면 좋을 것입니다.

     

베드로에게도 그런 장소가 있었지요?

아마 늘그막의 베드로에게는 그런 자기 삶의 기념비적인 곳이 꽤 여러 군데 생각났을 겁니다.

무엇보다도 주님께서 보내신 성령을 받고, 그 충만함으로 사람들 앞에서 열정적으로 선포했던 첫 번째 설교 장소가 생각났을 겁니다.

아무리 길게 잡아도 5분을 넘지 않을 그 짤막한 설교를 통해서 3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세례를 받고 주의 제자가 됐지요. 

그 엄청난 기적이 벌어졌던 예루살렘의 어느 거리를, 아마 그는 죽을 때까지 잊지 못했을 겁니다.

그 전에, 주님이 해처럼 빛나는 모습으로 변해서 엘리야와 모세와 더불어 말씀하셨던 변화산의 영광도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얼마나 좋았던지 여기가 좋사오니 여기 초막 셋을 짓고 살겠습니다. 그리고 그 세 분을 영원히 찬양하며 살겠습니다 고백했었지요.  

그런가 하면 자신의 철 없는 행동 때문에 예수님께 실망을 안겨 드렸던 장소도 있었습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 함께 기도해 달라시며 야고보, 요한과 함께 자기를 데리고 가셨던 겟세마네 동산입니다.  

계속 잠만 자다가 그곳에서 사랑하는 주님을 지켜드리지 못하고 잡혀가게 했었지요.

더 잊을 수 없는 곳은, 아마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일 겁니다.

대제사장 수하들에게 끌려갔던 예수님이 걱정돼서 그곳까지 오긴 했지만, 바로 그 집 뜰에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었습니다.

그 일을 생각할 때마다 내가 무슨 염치로 예수님의 제자라고 말할까 자책 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보낸 후, 자기 자신에 실망해서 고향으로 돌아가지요?

다시 고기를 잡고 있을 때 부활하신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자기를 불러주신 그 해변도 잊지 못할 장소일 것입니다.

세 번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시고, 그렇다고 대답을 하게 하셔서 세 번 부인했던 그 허물을 상쇄시켜 주셨던 곳이지요.

그래서 마음의 짐을 벗어 버릴 수 있었습니다.

 

그 예루살렘의 어느 모퉁이, 변화산, 겟세마네 동산, 대제사장 집의 뜰, 벳세다의 어느 해변.. 다 잊을 수 없는 곳일 겁니다.

다 인생의 한 획을 그은 추억의 장소지요.

그러나 베드로에게 가장 잊을 수 없는 곳은 아마도 예수님을 처음 만났던 갈릴리 호숫가일 겁니다.

누구나 마찬가지지만, 처음이란 말은 언제나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삶다운 삶을 살기 시작했던 장소나 사건은 결코 잊을 수 없는 법이지요.

어려서부터 배운 고기잡이를 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그 지방 사람들에겐 숙명이었을 겁니다.

자기 동생도, 친구들도, 이웃집 사람도 다 똑 같은 일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사방을 다 둘러봐도 어부들 밖에는 없는 겁니다.

그러니 자기도 그렇게 살아가는 것은 자연스럽게 여겨졌을 겁니다.

그리고 그 나이 될 때까지 다른 일은 생각도 못한 채 성실하게 그 일을 해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모든 게 변하면서 여태 해왔던 일과는 전혀 다른 일을 시작하게 됩니다.

고기 낚는 일을 버리고 사람 낚는 일을 하게 된 것이지요.  

바로 그 일이 시작됐던 장소에 지금 우리는 와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그 베드로의 추억을 우리 것으로 삼아서 돌아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제가 전에도 했었고, 그게 아니더라도 여러분이 한국에 계실 때 자주 들었던 말씀일 겁니다.

하지만 이것은 주기적으로 다시 떠올려서 생각하고 다짐하고 결심해야 될 일입니다.

뭔가 풀리지 않는 매듭이 있을 때, 뭔가 일을 하긴 하는데 표나는 것 없이 지지부진할 때, 이런 저런 일로 심신이 처져 있을 때, 또는 내 영혼의 우물에 바닥이 보일 때 오늘의 말씀은 우리들을 잡아 줄 것입니다.

오늘도 말씀 가운데 은혜 받고 다시 시작하는 계기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은 어떤 중요한 사건을 말할 때, 그 사건 전체를 상징하는 뭔가를 보여주는 일이 많습니다.

말씀 드린 대로 오늘 말씀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나서 고기 잡는 일을 팽개치고 제자가 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 과정 속에서 사건 전체를 상징하는 게 하나 있다는 겁니다.

그것을 오늘 본문 2절과 3절 상반절에서 찾을 수 있는데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다같이 읽어 볼까요?)

호숫가에 배 두 척이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바로 배입니다.

그런데 배도 그냥 배가 아니라 빈 배라는 것입니다. 

80년대와 90년대에 대통령을 세 사람이나 만들어서 킹 메이커로 불렸던 어느 정치인이 있었는데 그 분의 호가 허주(虛舟)였습니다.

빈 배라는 뜻이지요.

그 분은 작고하셨는데 기독교인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호를 그렇게 지었다면 뭔가 비밀을 알았던 사람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이 빈 배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호숫가에 배 두 척이 있었습니다.

그 배에 주인인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곳을 지나시다가 그 두 배 중에 한 배에 오르십니다.

그리고 거기서 말씀을 가르치셨다 그랬습니다.

문맥으로 볼 때 사람들도 같이 배에 태워서 배 안에서 그들을 가르치셨다는 건지, 아니면 배를 뭍에서 약간 띠우시고 그 배를 강단 삼아서 약간 높은 곳에서 육지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말씀하셨다는 건지 확실하게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똑같은 배가 두 척이 있었는데 그 중 한 배에 오르셨다는 것이고, 바로 그 배는 베드로의 배였다는 겁니다.

여기서 드는 의문은, 왜 두 척 가운데 다른 배를 사용하지 않으시고 베드로의 배를 사용하셨냐는 겁니다.

그냥 넘어가도 될 일 같지만, 우리 생애 가운데도 이런 류의 피택(被擇)때문에 인생이 갈리는 일은 참으로 많습니다.

베드로가 배가 선택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배는 바로 우리들 자신이고 그 배의 상황을 훑어보면 우리가 할 일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 전에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게 있는데, 바로 이 사건이 있기 전 베드로에게 일어났던 일입니다.

아시다시피 밤새 그물질을 했는데 고기를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어려서부터 고기잡이로 잔뼈가 굵은 베드로였는데, 밤새 애썼는데도 단 한 마리도 못 잡았다는 건 일부러 그렇게 하려고 해도 어려운 얘기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그는 단 한 마리도 못 잡은 채 다음 조업을 위해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 상황을 염두에 두셔야 오늘의 얘기가 쉽게 이해될 것입니다.

 

베드로의 배가 쓰임 받은 이유와 우리가 주님께 피택되는 일은 똑같습니다.

그게 오늘 말씀의 핵심입니다.

결론부터 말씀 드리면 오늘 베드로의 배 안엔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에 쓰임 받았습니다.

보통 고깃배라면 의당 실려 있어야 될 것들이 있지요?

그게 다 비워져 있었다는 겁니다.

그 중에 단 한 가지라도 실려 있었다면 베드로의 배는 쓰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쓰시는데 방해되는 것들이 있다면 치워야 할 것입니다.

오늘 그렇게 배에서 치워진 것 세 가지를 알아 보려고 합니다.

 

고깃배를 타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저는 강원도 영진이라는 조그만 어촌에서 배를 타고 한 시간 정도 나가서 어부 두 분과 함께 가자미를 잡아 본 적이 있습니다.

처음 탔던 고기배라 멀미도 많이 났고 거센 파도가 일 때마다 두렵기도 했지만 재미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배를 타면서 한 가지 아주 불편한 일이 있었습니다.

보통 배 안에서는 운신하기가 편할 것 같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물건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물입니다.

그물이 있어야 고기를 잡지요?

물론 낚시로도 잡을 수 있지만 대량으로 잡기 위해서는 그물이 필수입니다.

그물은 베드로의 배에도 반드시 있어야 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그물이 지금 배 밖으로 나와 있습니다.

만약에 배 안에 그물이 그대로 있었다고 생각해 보시지요.

아마도 예수님은 그 배에 오르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베드로의 첫 번째 비움입니다.

 

배에서 그물은 무엇일까요?

고기를 잡기 위한 도구입니다. 수단입니다.

반드시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손보고 지금 쓰고 있는 것 보다 더 좋은 게 있으면 계속 바꿔줘야 될 것들입니다.

우리는 지금도 계속 좋은 것으로 바꾸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계속 좋은 것으로 바꿔줘야 할 것들에 대해서 예수님은 오히려 불편함을 느끼십니다.

그물이 좋으면 우리에게는 좋지만 지금 베드로의 배에는 그게 비워져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사역이 수월해 지실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스팩 쌓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더 성능 좋은 그물로 교체하고 또 교체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는 겁니다.

학벌이 그런 것일 것이고, 물질이 그런 것이고, 외모가 그런 것일 것이고, 지위나 든든한 백그라운드가 그런 것일 겁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런 그물을 비우시길 원하십니다.

그런 인간적인 수단은 크게 고려하지 않으신다는 겁니다.

물론 그것을 무조건 배제하신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것들을 잘만 사용하면 엄청난 열매를 거둘 수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게 주님을 향한 마음이나 사랑하는 마음이 빠진 채 쓰여진다면 그건 보통 일과 아무 것도 다를 게 없습니다.

그렇게 되느니 차라리 주님께서는 그 모두를 배제하고 당신께서 주신 것만을 사용하기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재능이나 지식이나 각종 스팩 등 유 무형의 모든 소유는 영적인 힘과 결합할 때만이 더 강력해지고 오래갑니다.

 

20세기 최고의 강해설교가라면 영국의 마틴 로이드 죤스 목사님을 꼽습니다.
참 훌륭한 설교가십니다
.
그런데 이 분이 어떤 분이시냐 하면 의사였습니다
.
의사도 보통 의사가 아니라 왕립 의사였습니다
.
영국에서는 National 보다 더 위에 있는 게 Royal 입니다
.
왕립의사라는 것은 명예와 돈과 실력, 튼튼한 배경, 이 모든 게 다 있다는 얘깁니다
.
이 분이 목사가 되기로 작정했을 때는 왕립의사라는 것을 최대한 살려서 목회하기를 원했습

니다.
우리 생각에도, 진료도 해 주면서 목회를 하면 유리한 점이 많을 것 같은데 하나님은 그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
그것을 안 죤스 목사님은 진료를 중단했습니다.

그리고 목회에 전념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에게 놀라운 설교의 능력을 주셨습니다
.
아직도 그 분을 따라갈 만한 강해설교가는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권력이란 그물, 돈이란 그물, 재능이란 그물, 소유라는 그물을 다 비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오늘 여러분에게 주시는 분명한 메씨지를 들으시길 바랍니다
.
"
네가 의지하고 자랑하는 것을 다 비우고 나 예수가 주는 능력을 최우선으로 사용하라!"
  

베드로의 배에 첫 번째로 치워진 것은 그물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우리라는 배에 가장 먼저 비워야 될 것은 우리가 의지하는 수단과 도구인 그물입니다.
그 그물을 비움으로써 주께 쓰임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그 배에 있었어야 할 것은 고기입니다.
그런데 지금 베드로의 배에는 고기가 없습니다
.
고기가 비워져 있을 때 그 배는 쓰임 받을 수 있었습니다
.
지금 베드로의 배에 고기가 없는 것은 물론 밤 새 한 마리도 못 잡아서였습니다
.
어찌 보면 밤 새 한 마리도 못 잡은 것이 예수님께 빌려드리기에는 훨씬 좋았는지 모릅니다
.

여러분!

가진 게 없다고 너무 실망하지 마세요!
어쩌면 주님은 우리의 그런 상태를 더 좋아하시는지도 모릅니다
.
고기가 배에 있게 되면 배 안에는 냄새가 나게 됩니다
.
생선 비린내가 진동할 겁니다
.
그러면 냄새 나는 배에서 예수님이 말씀 전하시기는 곤혹스러웠을 것입니다
.
그런데 지금 이 배는 빈 배입니다
.
고기가 없으니 냄새 또한 나지 않는 빈 배입니다. 
  
그럴 때 이 배는 예수님이 말씀을 전하는 장소로 쓰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베드로에게 고기는 무슨 의미일까요
?
고기는 그 배가 있기 위한 궁극적 목적입니다
.
고기를 잡아서 팔아야 돈이 생기고, 그 돈으로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을 이룰 수 있는 것입

니다.
그래서 고기는 베드로의 야망이요, 삶의 목표이고 목적입니다
.
그래서 한 마리라도 더 잡아보려고 여태까지 몸부림 쳐 왔던 겁니다
.
그런데 자기를 위한 목표와 야망이 없어졌을 때 그 배는 쓰임 받았던 것입니다
.
우리도 우리만을 위한 목표를 버려야만 합니다
.

아직도 세계의 굵직굵직한 테러의 배후로 지목되는 빈 라덴의 행방은 오리무중입니다.

그렇게 미국이 그를 죽이려고 애썼지만 그는 아직도 어디엔가 살아있는 전설적인 인물입니다.
이 사람은 원래 사우디 아라비아의 건설 재벌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
그의 재산은 3억불이나 됐습니다
.
여생을 안락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이었어요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슬람 국가인 아프가니스탄에 소련군이 침공해 오자, 일신을 정리하고 AK 소총을 들고 전쟁터로 나간 사람입니다
.
그는 자신을 이슬람의 아들로 자처했지요
.  
거기에 사람들이 열광한 겁니다
.
이슬람 국가를 하나로 뭉치게 할 탄탄한 이론으로 무장되어 있을 뿐 아니라, 재력가로서 돈

을 쓸 줄도 알았고, 또한 열정적인 혁명가로 돈을 포기하고 행동으로 나설 줄도 알았던 사람 입니다.
  
그의 이런 모습에서 이슬람권 사람들은 그에게 충성을 맹세한 것입니다.  
자기에게도 야망이 있었겠지만, 그것을 포기하고 이슬람 국가의 더 큰 야망을 밝혔을 때 그
는 사람들에게 추앙 받았던 것입니다.
저는 그의 혁명사상이 어떤 것인지 모릅니다
.
또 그가 한 행동은 거의가 다 파괴적인 것이라 전혀 동의할 수도 없는 것들입니다
.
그러나 그런 행동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그가 일신의 안락을 버리고 행동하는 혁명가로 나

선 것 자체는 높이 살 만합니다.
자신의 야망을 버리고 더 큰 공적(公的)인 야망에 목숨을 걸자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도처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말로는 모든 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한다고 합니다
.
그러나 많은 경우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보자기 안에 우리의 야망을 살짝 싸서 감추어

둡니다.
겉으로는 누가 봐도 주님을 위해서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
그러나 그런 경우 언젠가 보자기가 풀어지고 우리의 속셈이 드러날 때가 있는 것입니다
.
우리의 모습이 밝은 태양 아래 드러나게 된다면 우리는 얼마나 부끄럽겠습니까
?

제자들도 3년간 예수님을 열심히 따라다녔지요
?
예수님께 설교도 많이 들었습니다
.
하늘의 가르침과 아버지의 뜻에 대해서도 많은 말씀을 들었습니다
.
복음의 핵심이 무엇인지도 파악하고 있었어요
.
예수님께서 분명히 메시야로서 자기 나라를 해방시키고 구원하실 줄도 믿었습니다
.
그러나 제자들 모두가 마음 한 켠에 자기의 야망을 감추고 있었습니다
.
해방 이스라엘이 되면, 자신들이 독립운동가로서 예수님과 함께 왕 대우를 받는 것이었지요
.
그것 때문에 제자들 사이에 암투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

그러나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원한 것은 그런 게 아니었지요
?
제자들의 야망은 출세요, 권력이었지만 예수님이 바라신 것은 순교였습니다
.
복음을 전하다가 인도에서, 로마에서, 이름 모를 곳에서 끓는 가마솥에 던져지거나 톱으로 켜지거나 또는 십자가에서 거꾸로 매달려 순교하는 거였습니다
.
그게 예수님의 바램이셨습니다
.

우리의 야망과 예수님의 소원은 이렇게 다를 수 있습니다
.
우리가 가장 바라는 소원조차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쓸 데가 없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 속에 우리만을 위한 야망이 있다면 그것을 버리고 비우십시다
.
그래서 정말 주님을 향한 거룩한 목적, 거룩한 야망을 갖도록 하십시다
.
지금 이 시간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고기를 모두 다 배 밖으로 던져 버립시다
.!
그래서 주님께 다시금 귀하게 쓰임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그 배에 반드시 있어야 될 것 중에 비워진 게 뭘까요?

고깃배에 그물과 고기가 있어야 될 것은 물론이지만 그것을 쓰고 부리는 사람이 없으면 다 무용지물일 겁니다.

고깃배에는 반드시 어부가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지금 베드로의 배에는 가장 중요한 어부가 없습니다.

그 배의 주인인 어부 베드로가 비워졌다는 것입니다.

 바로 베드로 자신이 그 배에서 내려왔을 때, 그 배는 존귀한 일에 쓰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배의 소유권을 포기했습니다.
예수님 혼자만 배에 남게 해 드렸습니다
.
그래서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에게만 집중하도록 했습니다
.
자기 배라고 해서 만약 베드로가 그 배에 남아 있었다면, 그는 어쩌면 착각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
사람들은 아래 있고, 자기는 예수님과 함께 사람들을 내려다보면서, 자기도 뭔가 된 것처럼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
인간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존재입니다
.
완장을 채워주면 눈에 뵈는 게 없는 그런 속물 근성이 인간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

주님은 우리 모두에게 자신을 부인하기를 원하십니다
.
자신을 비우기를 원하십니다
.
그리고 그 빈자리에 주님의 이름으로 채워지기를 바라십니다
.

우리가 다 버릴 수 있어도 딱 한 가지 못 버리는 게 있지요
?
자존심입니다
.
무시당하는 것, 그것만큼은 참지 못합니다
.
자존심에 상처를 당하면 사람들은 참지 못합니다
.
그러나 그것조차 하나님 앞에 내려놓아야 합니다
.

아침에 총독관저를 나올 때, 빌라도는 아내에게 간곡한 권유를 듣습니다
.
오늘 예수라는 사람을 심문하게 될 텐데 그 사람은 아무 죄가 없으니 잘 판단하라는 거였습

니다.

그리고 얼마 있다 다른 사람을 통해 그는 또 한 번 아내의 전갈을 듣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당신이 함부로 상관할 일이 아니라는 거였습니다
.
간 밤에 꾼 그의 꿈 때문에 많이 힘들었노라는 얘기까지 덧붙였습니다.
  
그 빌라도 앞에 예수가 나왔습니다.
예수는 조금도 비굴함이 없었습니다
.
꼭 필요한 말만 했고, 물음에 대답도 별로 하질 않았습니다
.
예수에게 당신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다고 으름장을 놔봤습니다
.
그래도 예수라는 사람은 별 동요가 없었습니다
.
빌라도는 예수가 자기 앞에 무릎 끓고 빌기를 바랬습니다
.
자기는 유대의 총독이고, 예수는 속국의 평민이었습니다
.
그가 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자기에게 총독에 걸맞는 존경을 표하면 자신은 얼마든지 예수

의 처형을 막아 줄 수 있었습니다.
예수를 내 주지 않아서 발생하는 폭동은 얼마든지 진압할 자신이 있었습니다
.
그러나 예수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
결국 그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도록 유대인들에게 넘겨주었습니다
.
예수라는 사람은 아무 죄가 없었습니다
.
그러나 그는 자기에게 빌지 않았습니다
.
예수라는 사람은 자기의 자존심에 흠집을 냈습니다
.

그것 하나 때문에 역사의 커다란 물줄기를 돌려놓을 수 있는 게 자존심입니다
.
잘못된 자존심은 두고두고 오명을 남기게 됩니다
.
그러기에 오늘도 전 세계 교회는 본디오 빌라도의 이름을 부르면서 2000년 전에 그가 한 짓을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을 다짐하는 것입니다.

 

김명민이라는 배우를 아시지요?

똑 같은 배역도 그 배우가 연기하면 다르다 그럽니다.

그 배우가 연기하는 것을 보면, 본인은 하나도 안 보이고, 지휘자로, 의사로, 장군으로, 루 게릭 병 환자 그대로입니다.

 

우리도 그럴 수 없을까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면, 내가 산 것이 아니고 예수가 산 것일 수 없을까요
?
내가 그리스도의 거울이라면 나 때문에 주변 사람이 예수의 모습으로 전염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
내가 사랑의 빚 외에는 지지 말아야 될 사랑의 전령(傳令)이라면, 우리가 가는 길엔 그 사랑의 흔적이 남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

텅 빈 베드로의 배를 보십시오
.
거기에 누가 계십니까
?
존귀하신 주님이십니다
.
베드로도 그 배 주인임을 포기하고 아래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
어느 순간 베드로의 마음 속에는 예수님으로 인해서 영혼의 저 깊은 곳에서 소망이 펑 터져

나오지 않았을까요?
내 배를 비우고, 내 시선을 주님께 고정시킬 때, 우리 속에서는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이 강같이 흐르게 되는 것입니다
.

그 후의 일은 우리가 아는 대로입니다
.
베드로의 배는 다시 원래의 목적대로 쓰여졌습니다
.
하지만 그 배는 이전의 베드로가 주인이었을 때의 배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주인이 된 배였습니다.

어떻게 됐는지 아시지요?

그물을 들어 올릴 수가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우리의 것을 비울 때, 그때부터는 주님이 일하십니다
.
우리가 할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습니다
.
베드로는 자기 배에서 고기들이 이리 튀고 저리 튀면서, 그 놈들이 토해놓은 무지개빛 물보라를 보면서 황홀해 했을 겁니다.
    

우리도 그런 황홀한 순간을 맞이하십시다.
우리의 수단을 포기하십시다
.
우리만을 위한 야망도 접읍시다
.
나 자신까지 십자가에 못 박읍시다
.
그래서 이제부터 주님이 일하시는 것을 보십시다
.
우리가 우리 것을 비워서 어떻게 쓰임 받는가를 설레는 마음으로 지켜보십시다
.
그물도 비우고, 고기도 비우고, 나 자신까지 비우십시다
.

여러분께서 지금 작게나마 쓰임 받고 있다면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
그만큼 비우셨기 때문에 쓰임 받는 것입니다
.
그러나 더 비우도록 노력하십시다
.
우리가 많이 비우면 많이 비울수록, 주님은 우리를 더 크게 쓰실 것입니다
.
우리의 최종목표는 99% 비우는 게 아닙니다
.
100%
를 비우는 것입니다
.

베드로에게 오셔서 그의 배를 비우게 하셨던 주님께서 오늘은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 배를 비우라고 하십니다
.
내 수단의 그물, 내 야망의 고기, 아무 능력 없는 나 자신까지 비우라고 하십니다
.
그 말씀에 순종해서 모두 비우고, 주님께 크게 쓰임 받는 여러분과 제가 되십시다

긴장이 풀리고 맥없이 시간 보내기 쉬운 이 여름 휴가철에 오히려 다시 한 번 베드로의 빈 배를 기억해 보십시다.

그리고 마음을 다 잡고 남들은 다 풀어져 있을 때 우리는 다시 긴장의 끈을 바짝 조여 보십시다.

해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달려들어 보십시다.

주님의 성령은 오늘도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 앞서 행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내 배를 모두 비워 주님께 쓰임 받고 승리하시는 이 여름이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